우도농악보존회 > 단체소개
 
 
 
  무형문화재 제 17호 우도농악 보유단체인 『우도농악 보존회』는 예로부터 영광에는 무령리 걸궁, 신청걸궁,
백수 상하사리 줄굿을 비롯하여 마을마다 당산굿(제)을 했으며 당산굿을 할 때에는 줄을 꼬고 반드시 농악을 쳤다.
이중 무령리 걸궁과 신청걸궁은 광대재인들로 구성되어 서로 쌍벽을 이루며 경쟁하였고 여기에 수많은 명인들이
활동하여 왔다.
1940년대 「8인당」이라는 임방울 협률사에서 활동한 박성근, 김만식, 신두옥, 신영창, 김오채, 전경환, 김양술,
송구만등 영광, 장성, 함평, 고창지역에 사는 이들이 모여 전문패를 구성하여 활동하였으며, 영광 신청에는 줄타기
를 잘한 임상문의 제자 김영철이 있었고, 나주가 고향인 임화천. 임화중, 형제가 있었으며 임화천의 아들 임동선은
영광과 고창을 오고가면서 살았으며 가야금에 능하였다. 이들과 함께 박채용(장구). 박만수(북). 김정근(젓대).
임화중, 임화천(피리) 전학근(해적)으로 삼현육각을 구성하였다. 이들이 신청의 원 뿌리를 이어 왔으며 임화천.
전학근. 전병남. 김성락. 김만식. 김홍식 등이 쇠나 장구를 치면서 활동해 왔는데, 그걸 일본인들이 찌그러 불었다
한다.
이후 일본 영향도 있었지만 초청할 사람이 없었고 농악의 세력이 약해져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73년경부터 농악단체에 대한 고민이 더욱 구체화 되어서 취미가 있는 사람 10여명이 1000원씩
걷어서 우도농악 계를 조직하게 되었다.



「우도농악 보존회」는 2009년 사회적 기업이 되어 무형문화재 제 17호 우도농악 교육. 공연. 예술봉사.
잡색탈 케릭터 상품판매 등을 해오고 있다.
안동 탈춤 페스티벌, 서울놀이마당, 예술의 전당, 광주비엔날레, 창원 람사르 총회, 서울중요무형문화재 전수관
초청공연, 노르웨이, 독일, 일본 초청공연 등 년 40회 이상의 공연을 하고 있다.
또한 1998년부터 「마을굿 축제」을 통하여 두레풍물과 신청걸궁(광대패)으로 이루어지던 옛 그대로의 마을굿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1994년 지어진 우도농악 전수관에서 서울 산업대를 비롯한 대학 및 일반인들 30여개 단체를 대상으로 매년
전수를 하고 있으며, 풍물굿을 통한 정신장애인 치병. 치유 강좌 등을 통하여 풍물굿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고 있다.

영광우도농악은「간이 맞다」고 하였다. 대중을 움직일 수 있다는 애기다.
그들의 밥과 노동과 희망을 달래주고 풀어주며 재생산되어 온 것이다.
못 입고 못 먹던 그 가난한 시절의 사람들보다도 더 쓰리고 힘든 삶을 살다가 굿쟁이 인생 80세에
「굿은 수시변통 이니라」라는 큰 가르침을 남기시고 떠나신 명인 전경환(무형문화재 제 17호 우도농악 상쇠)!
누구나 이구동성으로「설장구로는 전무후무하다」고 인정하는 설장구 명인 김오채(무형문화재 제 17호 우도농악
설장구)! 법성포 씻김굿 명인 최정옥! 고깔소고 명인 박용하! 할미(이상순)!
그리고 수십 년을 한결같이 우도농악을 지켜 오신 회원들을 비롯한 여러 어르신들의 힘으로 오늘의 이르고 있다.

2009년 현재, 잡색 명인으로 김건모(대포수). 조병대(양반). 구교순(참봉). 이종민(조리승). 신희엽(비리쇠).
김귀님(할미). 한영주(홍작삼). 홍복덕(좌창). 이옥희(각시). 강복덕(큰애기). 홍판례(우창)씨가 활동 중이다.
악기는 최용. 노병남. 김창이. 이상호. 민주옥. 김정숙. 최은미. 박주현. 송미경. 김영복. 문진수. 유동식. 박수복 등
많은 전수생과 이수자들이 우도농악의 전통을 지키고 발전 시켜, 세상의 모든 맺힘을 풀고 살맛나는 굿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국악과 졸업 및 동대학원 재학
- 사) 24반무예협회 경당 부회장
- 무형문화재 제 17호 우도농악 보존회장
- 풍물굿 치료사
- 2001~ 노르웨이 베스토플렌 폴케호그스콜레 대학과 해외문화교류사업
- 2009년 우도농악 보존회 (예비)사회적 기업 인정
- 대한민국 전통축제- 마을굿 축제 11회 진행